뮤지컬 <뱅크시>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고발하는 이 시대의 실상
<뱅크시> 김홍기 작가, 허수현 작곡가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4의 쇼케이스 선정작이 발표됐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를 모티프로 한 <뱅크시>가 그 중 하나다. 테이블 리딩 때부터 참신한 소재와 사회적인 메시지로 주목을 받은 이 작품은 결국 두 편의 쇼케이스 참가작을 선정하는 최종 선발에 포함되었다. 멘토링 과정을 통해 작품은 수정 보완했는데, 쇼케이스 선정을 위한 심사 대본은 실존하는 뱅크시 대신 그에게서 모티프를 따온 에그시라는 아티스트를 내세웠다. 

 

 

익명성 뒤에서 활동하는 뱅크시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4의 최종 쇼케이스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을 축하한다. 선정된 소감이라면?
김홍기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지금 작품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마감에 쫓기다 보니 멀리서 이 작품을 조망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 작품을 왜 쓰려고 했는지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다. 

 

지금 단계에서 무엇이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나?
김홍기
영화 <조커>를 보면 평가는 갈리지만 불편함이든, 희열이든 뭔가를 건드린다. 우리 작품도 폐부를 찌르는 무언가가 나올 것 같은데, 현재는 텍스트가 밖으로 폭발하지 못하고 있다. 임계점에 이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에 쫓겨 작업을 하셨는데, 생각한 대로 음악이 나올 수 있었나?
허수현
두 번째로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에 참여하는데 작년에는 잘 몰라서 소극적으로 참여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초기부터 같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에 음악이 다 있어서 그것을 잘 발전시키려고 했다. 어떻게 구현될 것인지 무대를 상상하면서 작업했다. 

 

뱅크시를 소재로 하면서 가장 끌렸던 점은 무엇인가?
김홍기
세계적인 스타인데 아무도 정체를 모르고 익명성 뒤에서 활동한다는 점. 그리고 뱅크시의 작품이 기교가 현란하지는 않지만 위트가 있고 폐부를 찌르는 강렬함이 있다. 그런 점에 끌렸다.

 

심사 제출 대본에는 뱅크시를 연상시키는 에그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김홍기
뱅크시를 다시 전면에 내세울 생각이다. 최근에 자신의 작품을 무제한적으로 풀어놓겠다는 인터뷰가 나왔다. 라이브 측과 협의해 뱅크시를 내세워 작업하려고 한다. 

 

런던이 배경이다. 작품 속에서 런던을 자본주의의 폐해가 집약된 도시로 그리고 있다. 
김홍기
작품의 목적상 도식화시켜 표현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단순화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도 든다. 쇼케이스에서는 극렬한 빈부격차를 드러내기보다는 다층적인 도시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또 악역인 클라인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표현되었다는 생각도 한다. 

 

쇼케이스에서 작곡가로서 제안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허수현
음악적으로 다양하게 펼치기 위해서는 드라마가 먼저 다양해져야 한다. 인물도 좀 더 굴곡이 있어야 음악으로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커진다. 대본을 받고 음악적으로는 <렌트> 같은 작품을 생각했다. 인물의 분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정이나 슬픔도 있고, 이런 것들이 녹아들면서 음악이 풍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완성을 위한 발걸음, 쇼케이스
쇼케이스에서는 어떤 점을 확인해보고 싶나?
김홍기
이 이야기가 드라마적으로 흡입력이 있고 재미있는지를 점검해 보고 싶다. 기본적으로 보고 싶게 만드는 드라마인지를 체크해 보고 싶다. 글을 쓸 때 메시지보다는 스타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 이야기를 써야 배우 캐스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이야기에 정신없이 몰입할 수 있도록 수정하려고 한다. 

 

중극장 규모인데 대본에서는 세 명의 갈등이 중요하게 부각될 뿐 주변 인물들의 입체감이 별로 없다. 
김홍기
애초에는 남자 3인극으로 해보려고 했다. 개인 취향인데 무대에서 배우의 행동과 대사만으로 만들어내는 밀도와 에너지를 좋아한다. 멘토링 과정에서 주변 분들이 이 작품은 어느 정도 볼룸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다. 이 작품은 그래피티 작가들과 함께 펼쳐내는 장면이나, 경매장에서 열광하는 사람들도 보여주어야 하니까 조언을 받아들였다. 

 

처음 이 프로그램에 신청했을 때의 아이러니한 결말이 사라졌다. 
김홍기
초기의 결말 장면은 영화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장면이 레퍼런스였다. 마지막 씬에서 송강호는 어떤 사람이 얼마 전에 예전 범죄 현장을 보고 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 인간이 아직도 살아있구나. 스크린 정가운데 송강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데 한국 영화의 길이 남을 한 컷이라고 생각한다. <뱅크시> 마지막 장면에서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나 빼고는 다 안 좋아하시더라. 

 

그래피티 작가가 주인공이다 보니 힙합을 사용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허수현
힙합으로 뮤지컬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가사 전달도 어렵고 잘 안 붙는 음악이다. 위험 부담이 너무 많았다. 짧은 시간 내에 배우가 소화하기도 어렵고 아무나 어설프게 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다. 나 역시 그래피티가 소재로 쓰여 힙합을 생각해 보았으나 힙합만의 문법이 있는데 짧은 시간에 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잘못하면 힙합 마니아들에게 엉터리라는 말을 들을 거다. 

 

전체적인 음악 스타일은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가?
허수현
앞서 말한 대로 <렌트> 같은 음악을 상상했다. 리듬이 강하고 지금은 포 리듬(드럼, 베이스, 피아노, 기타)이지만 여기에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들어가 감싸주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이 작품은 선율이나 리듬을 어렵게 풀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오래 작업하다 보니 나 스스로 스타일이 규격화된 느낌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 합창도 많이 쓰고 화성적으로 묘한 구조들이 녹아드는 난해한 음악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도 들고, 도전 의식이 생기는 작품이다. 

 

뮤지컬 <뱅크시>가 경쟁력이 있는 지점이라면 무엇인가?
김홍기
많은 분들이 그래피티의 소재를 신선하게 봐주신다. 철저하게 현시점을 배경으로 동시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훌륭한 넘버를 가졌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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