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4

창의특강1 - 음악을 통한 드라마적인 설계

 

 

일시 : 2019년 5월 31일(금) 오후 2시
장소 : 홍릉 콘텐츠 인재캠퍼스
강사 : 박병성 (‘더뮤지컬’ 국장)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4 첫 창의특강이 홍릉 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진행됐다.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4에서는 프로그램에 선정된 창작진들을 위해 총 4차에 걸친 창의특강을 마련했다. 첫 강연자인 ‘더뮤지컬’의 박병성 국장은 ‘음악을 통한 드라마적인 설계’를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음악을 통한 드라마적 설계
영화, 소설, 연극, 뮤지컬 등의 서사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이들은 각 장르의 특성에 맞는 서사 전달 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뮤지컬에 가장 적합한 장치는 무엇일까? 박병성 국장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음악’을 제시했다. 뮤지컬 음악은 등장인물이나 시대 상황을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매우 핵심적인 요소다. 뮤지컬에서 음악을 통한 드라마적 설계(이하 음악적 설계)는 창작자의 의도, 주제의식을 구체적인 노래에 담아 드라마적으로 배치하는 것으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작업이다. 박병성 국장은 “창작자들은 종종 대본을 쫓아가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음악적 설계를 놓칠 때가 많다”라며 그 어려움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좋은’ 음악적 설계란 무엇일까? 박병성 국장은 뮤지컬 <에비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을 예시로 들어 뮤지컬에서 드라마틱한 음악적 설계 방식을 설명했다. 

 

리프라이즈, 비슷한 신호의 반복
뮤지컬 <에비타>는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이었던 ‘에바 페론’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에비타>와 같은 성-쓰루 뮤지컬에서는 반복되는 주제부를 통해 창작자의 의도를 전달한다. 즉, ‘리프라이즈(reprise)’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박병성 국장은 “두 시간 정도의 한정된 시간 안에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므로 새로운 신호보다는 이미 사용한 신호를 반복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연극에서 핵심 단어를 반복 사용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뮤지컬 <에비타>는 궁극적으로 ‘에바 페론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나?’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이다. <에비타>에서 가장 유명한 넘버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세요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에바가 국민을 향해 자신의 진정성을 피력하는 넘버다. 이 연설 장면만 보면 작품이 에바 페론에 대해 꽤 호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극 초반 에바의 장례 행렬에서 극 중 화자인 ‘체’가 부르는 ‘다 미쳤어, 왜 난리(Oh! What a Circus)’는 가볍고 비아냥거리는 뉘앙스로 에바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 넘버의 멜로디는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세요’와 동일한 멜로디를 사용한다. 뮤지컬은 동일한 멜로디를 에바에 대해 호의적으로도, 또 비판적으로 사용해 마치 ‘줄다리기’를 하는 것과 같은 논쟁적 구조로 설계됐다. 이를 통해 ‘과연 에바는 대중들을 위한 성녀였나, 대중을 이용한 야망가인가’를 관객의 판단에 맡긴 것이다. 

 

 

뮤지컬의 서사, 음악으로 말하다
미국 뮤지컬계의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은 뮤지컬 작곡가를 ‘음악으로 말하는 작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음악으로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박병성 국장은 뮤지컬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를 예로 들어 그 원리를 설명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1950년대 미국 웨스트 사이드를 배경으로 새롭게 그린 작품이다. 러브 스토리는 물론, 당시 사회적 갈등까지 담아냈다. 작품은 사랑, 운명, 사회적 갈등의 음악적 모티프를 창작자의 의도에 맞게 배치해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바로 이것이 손드하임이 말한 ‘음악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 예를 살펴보면, 극 초반 샤크파 여인들이 부르는 ‘아메리카(America)’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의 희망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이 넘버를 주도적으로 부르는 인물은 아니타인데, 이후 이 넘버는 아니타가 적대 관계인 제트파의 아지트에서 능욕을 당할 때 거칠게 편곡되어 사용된다. 미국에 대한 꿈과 기대를 그리던 노래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리프라이즈된 것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이러한 드라마와 음악의 절묘한 구성을 통해 미국 이민자 사회의 대립과 무참히 짓밟힌 아메리칸 드림을 보여준다. 이밖에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는 ‘마리아(Maria)’와 ‘오늘밤(Tonight)’의 라이트 모티브를 작품 곳곳에 배치해 사랑과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한다. 

 

끝으로 박병성 국장은 “음악적 설계는 작곡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함께 진행해야 하는 작업이다. 뮤지컬만이 가지는 매력적인 요소를 잘 살리기를 바란다”라며 당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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